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군(일본 제국) (문단 편집) === [[대체역사|만약 미군이 일본군 장비들을 그대로 한국군에 인도했다면?]] === 미군이 이 일본군 장비들을 몽땅 없애지 않고 [[대한민국 국군]]에 인도했다면 북한군의 침략에 보다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일부 있다. 이는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군 장비를 전후에 유용하게 사용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 북한군도 창설 초기에 소련제 장비를 보급받기 전에는 소련군이 압수했다가 넘겨준 일본군 총기를 사용했으며, 일본제 항공기도 소수 사용했다고 한다.[* 북한공군 마킹을 한 하야부사의 일러스트가 떠돌기는 하지만 이는 결국 재생에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군도 일본군 훈련기나 수송기는 몇 기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 제2차 [[국공내전]] 당시 중공군이 [[치하]]를 비롯한 일본군 장비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주둔 일본군은 전투 없이 항복했으므로 남겨진 물자가 많았다. 베트남 주둔 프랑스군도 본토에서 중장비를 많이 받아오지 못해 많은 양의 일본제 장비를 사용했다. 그래서 프랑스군과 베트남 독립군 둘 다 일본군의 잉여 군수품을 잘 활용했으며 프랑스군은 하야부사와 같은 군용기도 운용했다. *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인도네시아 독립군측이 일본군 잉여 군수품 및 장비(군용기까지)를 잘 활용한 예이다. 이쪽은 일본군 병사들까지 수천 명이나 갖다써서 장비에 익숙한 인원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의 [[소련]]제 무장에 비해 성능이 떨어져 별 도움이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중국 국부군은 개판이었으며 북한군의 수준 또한 그리 좋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대대급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초기 한국군보다는 나았으며, 한국전 초기엔 상태가 좋지 못했다지만 그 미군도 몰아붙였다. 또한 설사 보유한다 하더라도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과의 질적 차이는 그리 달리질게 없었다. 당장 일본군의 주력 [[치하]] 따위와 북한군의 소련제 [[T-34-76|T-34]]를 비교하면 같은 중형전차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 자체가 무안할 지경[* 참고로 독소전 초기에 나온 T-34와 한국전쟁기간 북한군이 사용한 T-34는 명칭과 생산력만 같은 전차이다. 당장에 오산에서 미군이 털렸던 이유 중에 하나가 T-34에 대한 대비를 안해서인데, 미군이 파악한 전차의 성능과 눈앞에서 돌격해오는 전차의 성능이 많이 달랐다.]이나 마찬가지인데다 장비의 유지 보수 또한 간과될 것이 아니다. 부품이 떨어지면 다시 갈아끼워야 하고 지속적으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하나 일본제 전차 및 항공기의 부품이 떨어지면 수급할 방도가 없거나 힘들다. 배보다 배꼽이 커져 일본 장비를 굴릴 자원으로 다른 데 쓰는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좋은 장비를 미군에게 많이 공여받아서 필요없다는 의견도 있다. 대전차전력만 봐도 국군이 공여받은 57mm 대전차포는 초기형 치하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치하 개량형과도 비교될 물건이 아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진지하게 따지고 고찰하기 보다는 미군정이 워낙 한국군의 무장에 인색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무기를 흡수해 사용하자는 것은 어차피 없는거 그거라도 써야 될 판 아니냐 하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미군이 참전하고 한국군에 대한 대대적 재무장이 이루어지는건 역사대로 기정사실이니 북한군의 남침과 [[낙동강]] 전선까지의 그 공백을 어떻게 최소한이라도 메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의 반영이다. 보통 그런 주장을 하는 군사 매니아들은 총기류나 기갑장비보다는 항공장비나 화포류에 관심을 보이는 편이다. 총기류야 워낙 수량이 많다보니 폐기하고도 충분히 유용했지만 사실 성능도 신통치 않았고, [[M8 그레이하운드]]를 육본직할로 고이고이 모시던 당시 국군의 사정상 찬물 더운물을 가릴 필요는 없었지만 상술했듯 일본 기갑차량의 악명이 워낙 높은데다 T-34를 저지시키지 못할 것은 똑같을터라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화포 또한 성능이 좋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공수부대용 경 야포나 소구경 [[박격포]] 밖에 없던 국군의 사정상 유용했을거라 생각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화포라는 무기체계가 질보다는 수량에서 오는 이점이 크다고 판단되며 북한과 정교한 대포병사격을 하며 포격전을 벌일 것은 아닐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군의 부족한 약점을 최대한 가리면서도 북한과의 실질적 전력차이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들이 아쉬움을 받는 편이다. 실제로 광복후 조선인 출신 조종사들이나 항공인들이 발족한 단체가 공군 창설을 준비하며 일제 항공기들을 인수하려 했고, 미군정이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항공인 2명이 '날 수 있는 기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면서 미군의 비행 금지령을 무시하고 비행을 하는 바람에 미군정이 없던 일로 해 버리고 일제 공군기들을 예정대로 분쇄해버린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lyingsimul&no=118913|사례가 있다.]] 신생 한국군의 가장 부족하던 전력 중 하나가 항공부분이기에, 남겨놓은 것을 조금이라도 활용했다면 적어도 우리 전력에 마이너스는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군 쪽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서 일본군이 남겨놓은 소해정 등의 소형함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일본군의 무기가 대량으로 남아있었다면 통제되지 않은 채 민간으로 유출되어 오히려 치안 악화로 이어질 여지도 있었다. 실제로 광복 후 혼란속에서 일제 무기들이 민간에 흘러간 흔적들이 보이며 혼란스러운 당시 정치 상황을 따라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경찰과 총격전까지 벌인 1946년 철도 파업 때는 파업단의 무기고에서 아리사카 60정에 일제 기관총, 그리고 무려 척탄통까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529537|나오기도 했다.]] 여순 사건 때는 반란군이 군용으로 보유하고 있던 아리사카 소총[* 본래 이 총은 14연대가 장비하던 것으로 새로 [[M1 개런드]]를 지급받고 나서 반납해야 하는 총이었다.]을 대로에 쌓아두고 분배하기도 하였으며, 관련 증언을 들어 보면 1960년대에 마을 멧돼지 사냥에 숨겨놓은 은닉 아리사카 소총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고 실제로 경찰이 압수 및 자진 반납받은 불법 총기 목록을 보면 아리사카 소총 등 일제 총기 두어자루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75004|#]],[[https://imgur.com/gallery/k1vTd|보인다.]] 90년대 초까지도 이런 총기들이 불법무기 신고 때 한두 자루씩 신고되곤 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조선군, version=59, paragraph=2, title2=일본군, version2=3357, paragraph2=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